다시 숨 쉬게 하고,
주님의 지체로 살아가도록
배웅하는 공동체
A place to breathe again
교회에서 사람에게 지치고 실망해 떠났지만, 하나님만은 놓고 싶지 않은 분들. 오클레시아는 그 곁에서 함께 숨 고르고, 다시 걸을 힘을 얻을 때까지 함께 걷습니다.
교회는 떠났지만,
믿음을 떠난 것은 아닌 당신
지치셨나요
사람과의 관계, 쉼 없는 봉사와 기대 속에서 숨이 막히셨다면.
실망하셨나요
믿었던 사람과 공동체에 상처받고, ‘교회’라는 이름에 마음이 닫혔다면.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기도하고, 여전히 그분과의 관계를 이어 가고 싶다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주님처럼사 42:3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
작은 이민 사회에서 내 이야기가 알려질까 걱정되시죠. 오클레시아에서는 처음 몇 번의 만남 동안 이름도, 출신 교회도, 직분도 묻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은 ‘숨 이름’으로 편하게 머무세요.
오클레시아는
The Organic eKKlesia. 유기적인 생명으로, 여전히 부르심 받은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조직과 시스템이 아니라 생명과 관계로 움직입니다. 떨어진 가지가 다시 포도나무에 붙고, 흩어진 지체가 다시 몸으로 돌아가도록 돕습니다.
‘밖으로’ + ‘부르다’, 부르심 받은 무리. 교회 밖에 있어도 당신은 여전히 부르심 받은 존재입니다. 그 부르심을 다시 기억하도록 돕습니다.
세 가지 움직임, 다섯 걸음
각자의 속도를 존중합니다. 누구도 다음 단계로 떠밀지 않습니다.
숨 돌리기
판단 없이 맞이합니다. 이름도 배경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숨 고르기
스스로 이름을 밝히고, 상처를 꺼내며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신뢰를 천천히 되찾습니다.
새 숨
사람이나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뿌리내리고, 은혜로 받은 구원을 다시 이해합니다.
숨 나누기
일상에서 복음을 살아 내고, 이제는 또 다른 지친 이의 숨이 되어 줍니다.
숨결 따라
스스로 준비되었을 때, 섬길 공동체를 함께 찾고 축복하며 배웅합니다.
숨터의 약속
상처를 꺼내 놓아도 안전한 자리. 말할 권리를 모두가 나눕니다.
- 숨 이름으로 만납니다. 이름과 배경을 묻지 않습니다.
- 돌아가며 말하고, 끊지 않습니다. 인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 “여기까지예요.” 이야기의 끝은 말한 사람이 정합니다.
- 조언보다 경청. 고쳐 주려 하기보다 먼저 들어 줍니다.
- 아픔은 정직하게, 정죄는 없이. 교회와 사람의 이름은 말하지 않습니다.
- 여기서 나눈 이야기는 여기에 머뭅니다. 밖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하지 않습니다.
붙잡지 않고, 축복하며 배웅합니다
오클레시아는 머무르게 하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게 하는 다리입니다. 스스로 준비되었을 때, 섬길 공동체로 기쁘게 배웅합니다.
준비 확인
새 공동체를 섬길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숨동무와 함께 기도하며 확인합니다.
나의 미션 스테이트먼트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는 실천 방법을 스스로 정리하고, 나의 언어로 서술합니다.
배웅의 자리
숨터 앞에서 미션 스테이트먼트를 나누고, 축복 기도 속에 섬길 교회로 배웅합니다.
שׁוּב슈브. ‘돌아오다, 돌이키다, 회복하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영적 귀환의 뿌리 · 눅 15:20
교회와 성도,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분께
어떤 자리에서든 함께해 주세요
숨터 문의
숨 이름으로 편하게 연락 주세요. 이름이나 사연을 밝히지 않으셔도 됩니다. 온라인으로 먼저 만날 수도 있습니다.
동역자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숨이 되어 줄 분을 찾습니다.
- 숨터 인도자 · 숨동무
- 말씀·예배 섬김
- 동역 교회·목회자
- 전문 상담 · 온라인·미디어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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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okkeles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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